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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메이저리거의 "흔한" 출산휴가

by 토아일당 2015. 7. 22.



뉴욕 메츠의 2루수 다니엘 머피는 2014년 시즌 개막전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출산을 앞둔 아내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한 라디오방송 진행하는 호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개막전을 빼먹는 것은 메이저리거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비난에 동조하는 사람보다는 정신나간 소리라고 욕하는 쪽의 여론이 휠씬 강했습니다.  


메이저리거의 출산휴가(보통 출산휴가는 maternity leave 라고 쓰지만 MLB 선수들은 일단 다 남자이기 때문에 paternity leave 라고 씁니다. 해서 출산휴가가 아니라 아빠휴가 라고 하는게 더 맞을수도 있겠습니다.) 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 콜비 루이스가 “공식적인” 출산휴가를 사용한 첫번째 선수인데 그게 2011년입니다.  


2011년 메이저리거가 출산휴가를 떠나다. 


MLB는 구단주들이 리그를 만들고 선수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 구단과 선수는 수사적으로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동등한 지위를 갖는 일종의 동업관계입니다.  리그의 가장 우선하는 규칙은 구단과 선수노조가 (선수가 아니라 선수노조입니다) 맺는 단체협약 (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입니다.


리그의 거의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단체협약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선수노조의 동의 없이 구단주 측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한 시즌의 경기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일, 포스트시즌의 규칙 예를들어 와일드카드를 몇장이나 둘것이냐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14시즌부터 적용된 비디오판독 판정이나 홈충돌 방지규정 역시 선수노조의 동의를 얻어 단체협약에 의해 승인될 때 시행될 수 있었습니다.   


선수간 트레이드 역시 노조의 승인 없이 불가합니다.  예전에 A로드가 자신의 연봉을 깍는 조건으로 이적을 추진했을 때, 노조가 이를 반대하며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당사자가 자기 연봉 깍고 팀 옮기겠다는데 그런 선례가 선수의 권익을 해칠 수 있다고 반대하는게 MLB선수노조이고, 노조가 하지 말라고 하면 그 트레이드 못하는게 미국의 메이저리그입니다. 


MLB의 공식적인 출산휴가 규정 역시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단체협약조항의 유무와 상관없이 문화적으로 관습적으로 선수들의 비공식 출산휴가가 허용되기도 했습니다.  이틀이나 삼일 정도 구단의 허락을 받아 아내의 곁을 지키고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첫번째 시간을 지켜보는 것이 이전에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구단 입장에서는 “비공식적” 출산휴가를 떠난 선수의 로스터를 비워둬야 한다는 불이익이 생기기도 합니다. 단체협약을 통해 출산휴가가 공식적으로 규정되면서 선수 측 뿐 아니라 구단도 얻는 것이 생깁니다.  “공식적” 출산휴가 기간 만큼 다른 선수로 로스터를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출산휴가에 비하면 장례휴가(bereavement leave)는 휠신 전부터 MLB 단체협약의 일부였습니다.  정해진 장례휴가 기간은 7일이며 구단은 이 기간동안 다른 선수로 로스터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출산휴가로 개막경기를 빠진 다니엘 머피에서 한 방송진행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그후 지독한 비난을 받았죠. 하지만 30년이나 40년 전이었다면 좀 달랐을수도 있습니다.



콜비 루이스가 누린 '행운'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선수들의 출산휴가 같은 것에 무조건 긍정적인 입장인 것은 아닙니다.  개막전에 출산휴가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선수를 비난하는 입장이 주류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나이가 많은 올드팬들은 내색은 안해도 속으로 그런 식의 개인주의적 세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공식적인 출산휴가를 떠난 첫번째 메이저리거 콜비 루이스는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에게 출산휴가를 통보받은 텍사스의 감독 론 워싱턴은 1977년부터 1989년까지 MLB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당시에는 시즌 중에 그의 팀 동료들 중 누가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휴가 같은 것이 있었을리도 없죠.  레인저스의 브로드캐스터 톰 그리브 역시 1970년대에 선수생활을 했지만 그 역시 시즌 중에 그런 일로 경기를 빠지는 것은 꿈도 못꾸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MLB가 아닌 다른 프로스포츠는 아직도 좀 비슷한 양상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MLB는 공식적으로 선수의 출산휴가를 인정하는 유일한 리그입니다.  소위 4대 프로스포츠라하는 나머지 NBA NFL NHL 어디에도 출산휴가 규정은 없습니다.   구단마다 선수마다 사정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산휴가 가는 것이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NBA 마이애미 히트의 크리스 보쉬는 그의 아들이 태어나던 날, 아내 곁이 아니라 닉스와의 플레이오프 게임이 벌어지던 경기장에 있었습니다.   NFL 선수였던 브랜든 아야바데죠는 자신이 트레이드된 것은 36시간 동안의 출산휴가를 갔었기 때문이라는 불평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종종 MLB의 스타플레이어들이 경기장과 돈 대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이들이 그런 결정을 지지하고 칭송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미담이 되는 이유는 그럴 수 없는 선수들이 여전히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MLB는 가장 나은 해결책을 택했습니다.  구단과 선수가 훈훈하게 배려하고 감사하며 가족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도화된 권리 즉 계약조항에 집어넣었고 그로인해 “배려”없이도 선수는 아내 곁에서 아이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고 구단은 대신 로스터를 하나 비워두어야 하는 “양보”없이 선수의 요구를 수용해줄 수 있게 된 것일테죠.  그게 기껏 2011년의 일이었습니다.  


MLB선수노조는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강성노조입니다.  그래서 백만장자 선수들의 이기심을 지키기 위한 조직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습니다.  그들은 예를들어 구단이 선수 연봉이 너무 비싸져서 리그 전체의 수익성이 위태롭다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로) 샐러리캡 같은 걸 도입하려 하면 기꺼이 파업을 불사합니다.  대부분의 팬들은 이런 노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미 일년에 천만달러 이상을 버는 선수들이 좀더 많은 돈을 받겠다고 파업을 거론하는데 그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많은 것을 더 좋게 바꾸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들이 부자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노조는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결과로 미국의 다른 프로스포츠와 달리 메이저리거들은 휠씬 더 쉽고 자연스럽게 가족 곁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담'이 더이상 '미담'이 아니어지는 사회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을 좀더 길게 나누지 못한 한 선수의 이야기에 대해 구단과 감독의 "인정머리없음"을 비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본질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더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느냐는 것이죠.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좋은 것들" (예를들어 MLB의 출산휴가 규정같은)이 한때는 누군가에 의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심지어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의로움' 같은 거창한 것들 말고 그저 내 아이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을 지키고 싶은 아버지 마음 같은 '도리'나 '인정'에 관한 것들 조차 말입니다. 


이런 갈등이 있을 때, 누군가가 인정머리없고 비정하다고 비난을 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대응은 오히려 눈에 보이는 “인정머리”가 개선되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약한 이들에게 가혹한 반대급부가 돌아가게 만들곤 합니다.


잘난 메이저리그에서 배워야 한다면 그건 몇몇 스타플레이가 보여준 '가족사랑과 헌신'의 '미담'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것이 더이상 '미담'이 아닌 당연하고 흔한 일로 바뀔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인륜"과 "도리"에 대한 것일수록, 인정이나 배려, 훈훈함이 아니라 계약, 규정, 제도 같은 것이 휠씬 나은 해결책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야구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아내 곁에서 태어날 아이를 기다릴 때 농구선수들이나 풋볼선수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개인의 권리가 좀더 존중된다는" 미국사회의 문화 말고 다른 뭔가가 더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MLB의 감독과 구단주들이 NBA의 사람들보다 더 배려심이 많고 인정이 넘쳐서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지금 가진 “좋은 것” “당연한 것” 중 원래부터 가졌던 것은 단 하나도 없을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뭔가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겠죠.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 뭔가를 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갖고 있는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출산휴가에 진보적인 나라는 아닌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