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를 진화시킨 "현명한 이기주의"
연봉조정신청제도 Salary Arbitration (1/3) http://baseball-in-play.com/225
자유계약선수 보상 - 퀄리파잉 오퍼 (2/3) http://baseball-in-play.com/226
사치세와 수익분배제도, 그리고 선수노조 (3/3) http://baseball-in-play.com/227
사치세Luxury Tax와 수익분배제도
자주 듣는 [사치세luxury tax]라는 제도 역시 그들 식의 합리주의입니다. MLB에서는 연봉총액이 높은 부자구단에게 [사치세]라는 것을 부과합니다. 물론 정부에 내는 것은 아니고 리그 사무국에서 받아갑니다. 매년 상한선 기준이 정해지는데 그것을 넘기면 초과금액의 50%를 부과합니다. 2014년 최다연봉구단인 다저스가 내야 하는 사치세가 2년간 3800만달러이니 적은 금액은 아닙니다. (다저스는 2년 연속 사치세 부과대상이 되면서 세율을 30%로 디스카운트 받았습니다)
부자구단이 좋은 선수를 독식하여 리그의 전력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다른 제도들 처럼 구단-선수 타협의 산물입니다. 구단 측은 (물론 모든 구단이 찬성한 것은 아니겠지만) 애당초 연봉상한제(샐러리캡)을 의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선수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판단한 선수노조는 완강하게 맞섰고 1994년 그 유명한 시즌 중단 파업까지 불사한 결과 샐러리캡 대신 사치세 부과 라는 방식으로 타협을 봤습니다. 동시에 모든 구단의 수익 중 34%(현재 기준. 처음에는 20% 정도)를 MLB가 걷어서 모든 구단이 동등분배하는 수익재분배 (Revenue-sharing Plan) 도 실행됩니다.
샐러리캡 대신 시행된 사치세 제도
누군가는 부유한 귀족노조의 염치없는 이기심이라 비난했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커미셔너였던 버드셀릭이 얼마전 퇴임 연설에서 자신의 임기 중 가장 가치있는 업적으로 사치세 도입과 수익재분배제도를 꼽은걸로 보면 그때의 타협안이 꼭 선수측에만 유리했다기보다는 결과적으로 구단주 측을 포함해서 MLB 모든 구성원에게 이롭다고 판명난 거 같습니다.
사실 샐러리캡이 팀간 전력평준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불확실합니다. 그건 오히려 고액연봉선수들의 이기심을 비난하기 위한 선동으로 휠씬 더 효과적이겠지요. 게다가 적극적인 투자의지와 능력이 있는 구단이 있을 때, 효과가 불확실한 샐러리캡으로 그들의 지출을 가로막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쓰고 싶은 구단은 더 쓰고 그걸 통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여 MLB구단 전체가 함께 나누자는 선택을 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옳았습니다.
역시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투자금액의 균형을 맞추고 그걸 통해 팀간 전력의 과도한 격차를 피하는 것이 리그에 이롭다. 그리고 리그운영자는 그것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어떤 수단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까 라는 것은 또다른 논제입니다. 만약 샐러리캡을 둔다면 그 금액은 얼마가 되어야 하며 또 어떤 종류의 예외저항을 두어야 할까요? 이런 접근는 필연적으로 선량한 중립적 재판관을 필요로 합니다. 최선의 기술적 결론을 찾아낼 만큼 유능하며 동시에 불편부당하게 공정함을 잃지 않을 그런 존재 말입니다. 과자 한조각에 목숨을 걸고 덤벼두는 흔한 남자아이 두명을 모두를 만족시킬만큼 정밀하게 간식거리를 나눠줄 아버지 말입니다.
그런데 MLB의 역사를 보면 그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좀 다른 방법을 선택해왔습니다. 둘이 싸워 해결하게 하되, 서로 상대방의 입장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오히려 손해가 되는 그런 게임의 룰을 만들어서 말입니다.
부유한 노예도 노예인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선수가 구단의 소유물로 취급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MLB 스타선수들은 고액 연봉을 받았습니다. 부자 야구선수들의 노조설립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세간의 눈초리에 대해 한 선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노예도 노예인 것은 마찬가지다”
스프링캠프에서 신시네티와 보스턴레드삭스 선수들에게 연설하고 있는 Union Leaser 마빈밀러
MLB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왔던 방법
MLB의 선수노조는 1885년에 처음 결성되었으나 사교모임에 가까웠고 몇번의 설립과 해체가 반복되다가 지금의 선수노조가 결성된 것은 1966년이었습니다. 71년 이래 선수노조는 5번의 파업을 실행했고 리그사무국은 3번의 직장폐쇄로 맞섰습니다. 현재의 MLB는 구단주의 모임인 MLB가 선수를 고용해서 운영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선수측과 구단측이 몇년 단위로 갱신되는 단체협약에 의거하여 운영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들은 동업자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파이에서 더 큰 조각을 가지려고 싸우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서로의 몫을 주장하며 충돌합니다. 물론 MLB 커미셔너와 사무국은 양측을 중재하고 조정하기 위해 관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3의 선량하고 중립적이며 유능한 판관이 되길 자처하기 보다는 양측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존중할 수 밖에 없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연봉조정신청 같은 방식 말입니다.
쌍방 이기주의가 만든 합리적 시스템
MLB의 구단이 유독 선하고 공정하여 선수의 권익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연봉조정신청자격을 얻기 전까지의 선수에게 제시되는 계약조건은 아주 열악합니다. 그 선수의 성적이 아주 뛰어난 경우조차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독재자가 생겨나는 이유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독재자가 생겨나지 않았다면 “누군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겠죠.
구단은 선수가 잡아둘 수 있는 수준 안에서 가장 싼 금액만 지불합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되기 때문”입니다. 구단이 선수의 권익을 고려한다면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연봉조정신청자격 취득을 앞두게 되면 구단은 가능성이 있는 선수에게 4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미리 제시해서 적당한 가격에 선수를 묶어두려 합니다. FA자격취득을 앞둔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FA자격을 가진 선수를 두고 다른 구단과 경쟁하는 것보다 싸게 계약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고, 선수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을 피하고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잇점이 있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이익을 보장하려 노력할 뿐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그런 과정이 MLB를 발전시켰는가 아니면 퇴보시켰는가 하는 점입니다. 상충되는 이해관계로 인한 대립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는 점이며,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과도한 비용을 지불했는가 아니면 그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 제 아버지가 그랬듯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사과를 최대한 공평하게 나누려 애쓰는 것보다는 확실히 동생에게 그것을 맡기는 쪽이 나은 것처럼 말입니다.
샐러리캡이 효과가 있는지는 증명된 적이 없지만,
샐리리캡을 포기한 MLB는 확실히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다
기계적인 샐러리캡이 아니라 부자구단의 운영을 그대로 인정하며 사치세 부과라는 방식을 택한 MLB에서는 가난한 구단이 부자구단을 이겨내기 위해 당시에는 괴짜들이 숫자놀이 정도로 치부되던 세이버매트릭스를 구단운영이 도입하여 신화를 써낸 오클랜드의 빌리빈 단장 같은 이가 나왔고 MLB의 구단운영은 새로운 혁신을 경험했습니다.
선수연봉을 높아졌지만 구단은 새로운 수익원을 지속적으로 개발했고 MLB의 매출은 2014년 기준 90억달러로 95년의 14억 달러에 비해 비약적 성장을 기록했으며 그사이의 인플레이션을 제외하더라도 321%의 실질성장에 해당합니다.
정확히 무엇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쌍방이 서로에게 압력을 받으며 지난 지난 20년동안 MLB는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해왔습니다. 전문성과 식견을 가진 현명한 제3자가 그들에게 마스터플랜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장기적인, 근본적인 미래와 혁신 그리고 발전의 방향을 고민할때, 또 상충되는 쌍방의 이해가 충돌할 때 선량하고 현명한 그리고 공정한 제3자를 자주 떠올립니다. 초월적 전문가의 마스터플랜을 목말라합니다. 하지만 MLB의 경험은 그보다 오히려 현장의 당사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이해를 존중하는 “게임이 룰”이 오히려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배움을 줍니다.
FA제도의 개선, 선수협의 역할, 40인외 드래프트 제도의 보완, 구장을 이용한 마케팅권리의 귀속 같은 KBO에서 아마도 필요한 발전을 위해 써먹을 수 있는게 있겠지요.
MLB선수노조에 절재적인 공헌자 마빈밀러는 201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땅한 자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예의 전당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이 위대한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지만, 그는 구단주 뿐 아니라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에게도 여전히 미움을 받는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그의 사후인 2013년의 명전 투표에서도 그는 탈락했습니다. 그가 MLB파업 40주기 기념 연설에서 말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윈윈을 말하지만 MLB같은 사례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는 미움받는 사람이지만 덕분에 MLB는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Marvin was a groundbreaker. Players of my era and the player of today should appreciate the benefits that resulted from Marvin's leadership. He had a great way of communicating and relating the issues to us. I was proud to be one of the players that sat alongside him. -- Joe Torre, MLB executive vice president of baseball operations and former MLB 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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