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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베이스볼인플레이

서캠프, 익스텐션과 체감구속 효과

by 토아일당 2017. 12. 5.

[베이스볼인플레이]140km공을 144km로 둔갑시키는 서캠프 - 일간스포츠 2016년7월28일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다. 


투수 손끝을 떠난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기까지는 0.4초-0.45초가 걸린다. 타자는 이 짧은 시간 안에, 날아오는 공의 방향, 속도, 구종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더 '빠른(fast)' 공은 더 '빨리(quickly)' 날아온다. 그래서 강속구는 투수에게 중요한 무기다. 공이 빠를수록 타자가 준비하고 반응할 시간이 그만큼 짧아지기 때문이다. 


패스트볼 궤적을 기준으로 할 때 시속 130km 공이 홈플레이트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0.464초, 140km 공은 0.433초, 150km 공은 0.404초가 걸린다. 투수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고 싶어할 시속 10km 더 빠른 스피드는 기껏 0.03초의 잇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절체절명 승부처의 타자에게 0.03초 차이는 천국와 지옥을 가를 수 있다. 시속 140km의 패스트볼의 헛스윙 비율은 5%에 그친다. 시속 150km에서는 9%로 높아지고, 155km가 되면 다시 13%로 높아진다.  투구 대응 시간이 단지 0.03초-0.04초 짧아졌을 뿐이지만, 그 차이는 이렇게나 크다.


한화의 새 외국인 투수 에릭 서캠프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이 시속 140km 근처다.  최고구속도 시속 145km를 겨우 넘긴다.  빠른 공이 아니다. 올 시즌 KBO리그 패스트볼 볼 평균 스피드는 시속 143km. 서캠프의 구속은 KBO리그 평균에도 미달한다. 하지만 그의 패스트볼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서캠프의 시속 140km 공은 조금 더 빨리 날아온다. 평균 도달시간은 0.420초다. 리그 평균은 0.433초다. 0.013초 차이라면 보통 사람은 알아챌 수도 없다. 하지만 찰나의 승부를 하는 투수와 타자에겐 다르다. 0.013초 차이를 속도로 바꾸면 시속 4km 차이다. 평균적으로 0.420초 도달시간이 걸리는 구속이 시속 144km이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나 팬이라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시속 140km라는 아주 평범한 구속으로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놀랍게도 144km에 해당하는 타이밍에 홈플레이트를 파고든다. 에릭 서캠프는 혹시 소위 말하는 “종속”이 빠른 투수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서캠프의 초속 140km 공의 종속은 129.0km다. KBO리그의 다른 투수들도 초속 140km 공의 홈플레이트 통과속도는 128.8km다. '아주 약간' 빠르지만 거의 차이가 없다.

 



어떤 투수가 던지든, 손끝을 떠날 때 속도가 같으면 홈플레이트에 들어올 때 속도도 같을 수 밖에 없다. 투수가 던진 공이 유독 세상의 물리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한 당연한 일이다. 서캠프의 공이 구속이 같은 다른 투수 공보다 홈플레이트에 더 빨리 도달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공을 놓는 릴리스포인트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투수는 고유한 투구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릴리스포인트는 이 메커니즘에 따라 달라진다. 릴리스포인트는 3차원 공간의 좌표다.  이 중에서 공을 놓는 위치가 마운드로부터 얼마나 먼지, 그래서 타자에게 얼마나 가까운 곳이었는지 측정하는 값을 '익스텐션(extension)'이라 부른다.


KBO리그 투수들이 패스트볼을 던질 때 평균적인 익스텐션은 투구판으로부터 187cm 앞 지점이다.  키가 크고 팔리 길면 익스텐션도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투구폼의 영향을 더 받는다.  한국 야구 지도자들은 익스텐션이 긴 폼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미국 마이너리그 트리플A의 평균 익스텐션(190cm)도 KBO리그 평균과 비슷하다.


그런데 서캠프의 패스트볼 익스텐션은 220cm다. 2015~16년 KBO리그에서 100개 이상 패스트볼을 던진 투수 중 서캠프보다 더 긴 익스텐션을 가진 투수는 없었다. 서캠프는 평균적인 투수보다 무려 33cm 더 공을 끌고 나온다. 그 결과 그의 패스트볼의 타자체감구속에는 시속 4km가 더해진다.


서캠프는 메이저리그 56경기(선발 16회) 등판이라는 괜찮은 경력의 소유자다. 다양한 구종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투수기도 하다.  하지만 구속이 빠른 편은 아니고, KBO리그 첫 두 경기에선 공인구 적응 탓인지 우타자 상대에 꼭 필요한 체인지업을 거의 봉인했다.


그는 지난 화요일 SK전에서 6이닝을 소화했지만 5점을 내주며 다소 부진했다. 하지만 KBO리그 세 번 등판에서 16⅓이닝 평균자책점 3.36으로 무난한 출발을 하고 있다.


서캠프의 패스트볼 구사율은 63.1%이다. 올해 리그평균(48.9%)보다 꽤 높다. 결과도 좋다. 피안타율은 0.244, 피장타율은 0.378이다. 리그평균(0.288·0.437)보다 휠씬 좋다.  패스트볼 헛스윙 유도율도 7.2%로 리그평균(5.9%)을 상회한다. 서캠프의 패스트볼에는 스피드건에 찍히는 평균구속 140km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그게 +4km 체감구속의 효과 아닐까?


http://news.joins.com/article/20368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