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인플레이]포스트시즌에서 희생번트를 대야 할까?
일간스포츠 입력 2016.10.24
2016년 KBO 리그의 대세는 빅볼이다.
올해 경기당 희생번트 숫자는 홈·원정팀 합쳐서 0.9개다. 경기당 1개 미만 수치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포스트시즌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 와일드카드(WC) 결정전 2경기, 준플레이오프(PO) 4경기에서 10개가 나왔다. 그리고 PO에선 1·2차전까지 희생번트 5개가 기록됐다. 총 8경기에서 경기당 1.9개다. 무사에 주자가 출루하면 주저없이 번트사인이 나온다.
'경기 중요도'가 높으니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모순이다. 정규 시즌이든 포스트시즌이든 승리는 더 많은 득점이거나 더 적은 실점의 결과다. 번트보다 강공이 더 많은 득점에 유리하다면 그것은 정규 시즌이든 포스트시즌이든 달라져야 할 이유가 없다.
1889년 메이저리그 야구규칙에 처음 등장한 이후 희생번트는 오랫동안 야구의 당연한 전략으로 여겨졌다. 이 생각을 바꾼 사람들은 객관적 데이터를 분석한 세이버메트리션들이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라 불리는 빌 제임스는 그가 쓴 '야구 십계명'의 첫 번째에 “번트하지 말라”고 갈파했다. 희생번트는 득점 가능성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이유다. 메이저리그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그렇다.
KBO 리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2005~2016 12시즌 동안 무사 1루의 기대 득점은 0.93점이다. 이때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면 1사 2루가 된다. 그런데 1사 2루의 기대 득점은 0.75점이다. 0.18점 감소했다. 공격팀의 작전이 성공했는데 상황은 오히려 불리해진 것이다. 무사 1·2루도 비슷하다. 이때의 기대 득점은 1.59점인데, 1사 2·3루가 되면 1.51점으로 0.08점 감소한다. 역시 손해다.
물론 희생번트는 다득점을 노리는 전략이 아니다. 절실한 한 점을 목표한다. 그렇다면 1점 이상 득점할 확률은 높아질까? 무사 1루의 득점 확률은 43.6%다. 1사 2루는 42.2%로 감소한다. 무사1·2루는 65.3%, 1사 2·3루는 70.6%다. 이 경우는 득점 확률이 증가한다.
그런데 야구가 이런 통계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을까? 처음엔 미국의 주류 야구계도 그렇게 생각했다. 베테랑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제임스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현실과 한없이 동떨어져 있으며 야구라는 경기는 그가 풀이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현실은 제임스의 말대로 돌아갔다. 메이저리그 팀들은 희생번트를 줄이기 시작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갓 대중화되던 1990년대 초반 아메리칸리그 경기당 희생번트는 0.30개 정도였다. 올해는 0.14개로 그 절반 이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하는 팀들이 더 많이 이겼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정리되지 않았을 뿐 현장 야구인들도 희생번트보다는 장타와 출루가 더 나은 공격 방법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깨닫고 있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희생번트는 1920년 경기당 1.32개에서 1931년 0.52개로 급감한다. 세이버메트릭스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온 뭔가가 있었다. 1920년은 베이브 루스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홈런 54개를 쏘아 올린 해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자 메이저리그 사람들은 '스몰볼'의 대명사인 번트를 줄이게 됐다.
올해 KBO 리그에서 번트 감소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인 타고투저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시즌에서 희생번트라는 작전을 다시 꺼내는 감독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평균적으로 희생번트 뒤의 상황은 앞 상황보다 공격 측에 불리해진다. 하지만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세이버메트릭스에서도 데이터와 방법론이 발달하면서 희생번트가 유리한 상황이 있다는 연구가 나온다.
관건은 득점 환경이다. 타고 성향의 다득점 환경에서 희생번트 같은 작전은 효율성이 낮다. 하지만 투고 성향의 저득점 환경에서는 반대가 된다. KBO 리그 2005~2016시즌 리그 평균자책점 1위 팀을 상대한 공격에 한정 지어 다시 분석했다. 이 경우 무사 1루의 기대 득점은 0.80점, 1사 2루는 0.70점이다. 여전히 무사 1루가 공격 측에 유리하긴 하지만 차이는 줄어든다. 무사1·2루 기대 득점은 1.39점, 1사 2·3루는 1.42점이다. '역전'이 일어났다. 1사 2·3루가 더 많은 득점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란 뜻이다.
득점 확률로 보면 더 분명하다. 무사 1루의 득점 확률은 40.2%, 1사 2루는 42.9%다. 역시 역전이다. 무사 1·2루 득점 확률은 60.7%, 1사 2·3루는 70.7%다. 1사 2·3루의 득점 확률이 훨씬 더 높다. 희생번트의 필요성이 충분하다는 근거가 된다. 상대 투수가 강한 조건에서는 이런 반전이 있다.
고려할 요소는 하나 더 있다. 무사 1루에 희생번트가 성공했을 때 그 결과가 무조건 1사 2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KBO 리그에서 무사 1루 후 희생번트가 나온 뒤 상황의 기대 득점은 0.80점이다. 1사 2루의 0.75점보다 더 높다. 이유는 희생번트 뒤 야수 선택이나 수비 실책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사 1·2루도 마찬가지다. 1사 2·3루의 기대 득점은 1.51점이지만 '무사 1·2루+희생번트 성공' 상황의 기대 득점은 1.59점으로 더 높다. 희생번트는 아웃 카운트 하나와 진루를 바꾸는 작전이지만 다른 플러스알파도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시즌은 희생번트에 우호적인 환경일까. 대체로 그렇다.
올해 포스트시즌 10경기에서 각각의 팀들은 평균 2.6점을 냈다. 정규 시즌과 달리 극단적인 투고타저 환경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역대 33번 포스트시즌에서 평균 타율이 정규 시즌보다 높았던 적은 여섯 번뿐이다. 전체의 82% 시즌에서 가을에는 방망이가 식었다. 장타율 변화는 더 크다. 정규 시즌보다 포스트시즌 장타율이 높았던 적은 세 번뿐이다. 가을은 대체로 투수의 계절이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팀이라면 투수력이 강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팀 내에서 가장 좋은 투수들이 던진다. 물론 포스트시즌 타석에도 더 좋은 타자들이 선다. 타석의 결과는 투수와 타자의 상대적 격차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좋은 투수와 좋은 타자가 만났을 때는 어떤 일이 생길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강한 투수는 강한 타자를 잡아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강한 타자가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는 약한 투수를 '폭격'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강한 투수와 강한 타자가 만나면 투수 쪽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둘 사이 전적은 각각 자신의 시즌 평균보다 나빠지겠지만, 그 하락 폭은 투수보다 타자 쪽이 크다.
투수가 강세를 보이고 승패 결정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포스트시즌엔 투고 성향도 함께 나타난다. 수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수든 수비수든 실점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다득점이 어려워지면 한 점을 짜내는 스몰볼의 중요성이 커지고 이왕 얻은 1점을 지키는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 가을 야구에서 희생번트는 충분히 가치 있는 전략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076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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