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인플레이]'미친 선수'는 가을한정판 상품일까?
일간스포츠 2016.11.01
‘미친 선수’는 가을야구의 대표적 클리셰다.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선수가 3안타를 때려내거나, 결정적인 홈런 한 방을 날린다. 그리고 "역시 포스트시즌엔 '미친 선수'가 나와야 이긴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 '미친 선수'의 정체는 과연 뭘까. 가을이란 계절의 특이종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2015년 한국시리즈(KS)는 확실히 '미친 선수'의 무대였다. 두산 정수빈은 KS 5경기 동안 17타석(14타수)에서 타율 0.571 OPS(출루율+장타율) 1.647을 기록하며 두산의 우승을 이끌었다. 시리즈 MVP도 그의 차지였다. 정규시즌 정수빈의 OPS는 0.752였다.
플레이오프(PO)는 약간 달랐다. 시리즈 최고 타자는 OPS 1.085의 NC 손시헌이었다. 18타수 8안타 타율 0.444(2루타 3개포함) 을 쳤다. 하지만 상대팀 두산에도 비슷한 선수가 있었다. 민병헌이 홈런2개 장타율 0.684로 OPS 1.076으로 뒤지지 않았다. 대신 둘다 정수빈 만큼 압도적으로 '미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승부는 질보다 양에서 갈렸다. 두산에는 민병헌 뿐 아니라 정수빈(OPS 0.935) 오재원(0.929)이 있었다. NC는 OPS 0.900+ 타자가 테임즈(0.911) 한 명 뿐이었다. 또 두산에는 OPS 0.800+ 타자가 세 명(홍성흔, 양의지, 허경민) 있었지만, NC에는 여기서도 지석훈 1명 뿐이었다. 시리즈는 두산이 이겼다.
넥센-두산이 맞붙은 준플레이오프는 더 묘했다. 슈퍼스타 박병호가 홈런2개 OPS1.439 으로 활약했고, 박동원도 홈런 2개 OPS1.361로 충분히 미쳐줬다. 두산은 허경민(1.278) 정도가 겨우 비견될 정도였다. 하지만 시리즈 승자는 두산이었다.
올해는 준PO에서 오지환이 OPS 1.125로 '미친 선수' 역할을 하며 LG의 PO 진출을 이끌었다. 수비에서의 지배력도 보너스로 얹었다. PO에서는 NC 박석민이 그랬다. 그의 OPS는 무려 1.422 였다. 특히 2개의 홈런은 모두 결승타점이 되었다. 다만 전체적인 투고성향으로 타자들의 활약 이상으로 선발 투수의 지배력과 야수들의 수퍼세이브도 주목을 받았다.
‘미친 선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양상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 글에서는 '단기전에 폭발하는 한 명, 혹은 소수의 타자'가 시리즈 향배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준PO부터 5전3선승제 시리즈가 된 2008년 이후 올해 PO까지 포스트시즌 시리즈(WC 결정전 제외)는 모두 26번 열렸다. 이 중 OPS 1.250 을 기준으로 '미친 선수'가 등장했던 시리즈는 14번이었다. 12번은 없었다. 14번 중 두 팀에 모두 '미친 선수'가 있던 경우가 3번, 한 팀에만 있던 경우가 11번이다. 그리고 '미친 선수'가 있던 팀이 시리즈를 이긴 경우는 6번, 진 경우가 5번이었다. 의외로 팽팽했다. 다만 OPS 1.500 이상으로 '심하게 미친' 선수가 한쪽 팀에만 있던 경우가 세 번인데, 이 때는 모두 소속팀이 시리즈를 이겼다.
결과적으로 전체 시리즈 54%에서 '미친 선수'가 등장했고, OPS 1.250 수준으로 '미쳤을' 경우엔 시리즈 승패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신 OPS 1.500 수준이라면 모두 팀을 시리즈 승리로 이끌었다.
그런데, ‘미친 선수’란 것은 가을에만 등장하는 계절 한정품일까. 준PO, PO처럼 2016년 정규시즌을 5경기마다 끊어서 분석해보면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2016년 시즌은 팀당 144경기이므로 시즌 개막전부터 연속 5경기씩 묶으면 팀당 140구간이 된다. 10개 팀이니까 1400개다. 이중 OPS 1.250 이상의 선수가 나왔던 경우는 747번으로 53.4%다. 한 팀 기준이기 때문에 두 팀 중 적어도 한 팀에 이런 선수가 나올 확률은 78.2%가 된다.
그런데 올해는 사상 최고 수준의 타고투저시즌이었다. OPS 1.250+ 가 너무 흔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투고 성향을 띠는 포스트시즌과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올해와 달리 투고타저 경향이었던 2013년을 기준으로 했다. 2013년엔 OPS 1.250+ 선수가 나온 경우는 전체 1116구단 중 406번이었다. 36.4%가 된다. 두 팀 중 적어도 한 팀에 ‘미친 선수’가 등장한 경우는 확률적으로 59.5%다. 2008년 이후 포스트시즌 통계(54%)와 비슷하다.
따라서 '미친 선수'는 가을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5경기, 또는 7경기라는 단기전 시리즈에선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통계적 현상에 더 가깝다. 즉, 정규시즌에도 5경기 구간에서라면 '미친 선수'는 늘 나왔다. 그렇다면 정규시즌에서 이런 선수의 지배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2016년 정규시즌에서 OPS 1.250+ 선수가 나온 5연전의 팀 승률은 평균 0.528이다. 그리 높아보이진 않는다. 이런 선수가 둘 일 경우는 좀더 높아져서 평균 승률 0.610이다. 만약 OPS 1.500+ 수준으로 미친 선수일 경우라면 0.577의 팀승률을 올렸다. '미친 선수'의 지배력이 그리 압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표>2016년 정규시즌 '미친 선수'가 나온 5연전 승률상승
야구는 팀 스포츠다. '미친 선수'가 있다 해도 혼자서 팀의 승패를 결정하기엔 한계가 있다. 결국 팀의 전반적 전력 안에서 2.4%P에서 8.3%P 정도의 승률 상승을 가져오게 된다. 물론 이 정도도 굉장한 수준이긴 하다. 144경기 페넌트레이스라면 승률 2.4% 상승은 3.5승에 해당한다. 7경기 차이를 뒤집을 수 있다. 만약 OPS1.500 수준으로 미치는 선수 한 명이 계속 나온다면 7.1%P 승률 상승을 가져온다. 10승, 즉 10승 즉 20경기 차를 뒤집는다. 순위표에서 2~3계단을 극복할 수 있다. 다만, 이런 퍼포먼스가 한시즌 내내 지속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OPS1.250+ 두 명이 OPS1.500+ 한 명보다 효과가 크다. 크게 '미친' 한 명보다 '적당히 미친' 두 명이 더 낫다.
2016 정규시즌 5경기 구간에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는 NC 나성범이었다. 5월 4일 수원 kt전부터 8일 마산 LG전까지 23타석 19타수 14안타에 출루율 0.739 장타율 1.526을 기록했다. 홈런은 4개였다. 이 기간 팀은 5전 전승을 했다.
하지만 반대 사례도 있다. 2016년에 KIA 나지완은 두 번째로 심하게 '미친 선수'였다. 7월 13일 광주 SK전부터 21일 사직 롯데전 5경기 동안 홈런 4개 포함 출루율 0.625 장타율 1.500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기간 팀은 2승 3패에 그쳤다. '미친 선수'의 존재감은 크지만. 역시 야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는 아니다.
'미친 선수'의 출현 빈도는 정규시즌이나 포스트시즌이나 마찬가지다. 팀의 성공과 실패에 미치는 영향도 비슷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감이 가을에 유독 두드러지는 데는 다른 배경이 있다.
우선 포스트시즌에 상대하는 팀은 시즌 승률이 비슷한 강 팀이다. 따라서 작은 차이라도 승패결정에서 중요도가 커질 수 있다. 승률 0.600팀과 0.400팀이 만나면 선수 한 명이 미쳐도 승부를 뒤집을 수 없지만, 0.500팀과 0.530팀이 만날 경우는 다를 수 있다. 또 정규시즌에 3승 2패로 5연전을 마치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저 5할 승부를 한 정도로 기억된다. 하지만 준PO와 PO에서 3승 2패는 시리즈 승리다. 무게가 다르다.
그리고 가을 야구는 오래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KBO도 "포스트시즌 한 경기는 정규시즌 10경기와 같다"고 하지 않았나. 똑같이 '미쳐도' 가을에 '미치면' 특별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팬들은 '미친 선수'를 기다린다. 아직은 가을이 끝나지 않았다.
http://news.joins.com/article/2080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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